인간은 환경을 바꾸고 개발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또 바꾼 환경에 지배를 받게된다.

인간의 본성과 습관 등 모든 부분에서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그 환경이라는 것이 많지만 자연환경만 일단 생각해보자.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렸하다고 했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빨리빨리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요인중 하나하는 생각이 든다.

봄이되면 여름을 준비하고, 때론 가을 겨울까지 준비하기도한다.

또한 여름이되면 가을을 준비하고

가을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추운 겨울을 날 준비를 한다.

준비가 끝이 아니다. 준비한 것들을 치우거나 잘 정리해둬야한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들은 완전히 치워버려야하고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은 잘 정비해서 보관해야한다.

결국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금새 다음계절이오고 그 계절을 버티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한국 사람은 부지런하다는 선입견도 이런 원인이 있지않을까?

근면성실한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남기 위해 빠르게 움직여야하는 것이다.

밥을 굶지 않기 위해 얼어죽지 않게위해 끊임없이 다음계절을 준비하고 다음해를 준비해야하는 것이다.

기후변화가 심하지 않은 곳은 어떨까?

다들 알다시피 온난한 남쪽 나라들은 곡물도 쉬 잘 자라고 일년내내 밖에서 자도 얼어죽을 일이 없다. 열대 과일들 풍성하여 부지런하지
않아도 굶어죽을일이 거의 없다.

그럼 좀 추운지역을 보자.

예전에 몽골 출신의 공사장 인부 이야기를 듣게 됐다.

몽골은 겨울에 엄청나게 춥다. 기온도 낮고 허허벌판에 바람도 매섭다.

하지만 그들이 한국에 와서 겨울철 공사현장에 투입되니 추워서 일을 못한다 하더라.

왜그런고하니 그들은 겨울을 준비하고 겨울이 되면 너무 추워서 집밖에 거의 나오지 않고 그저 생존에만 집중한다더라.

그런데 우리는 겨울에도 움직인다. 다가올 봄과 여름을 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또 다음계절이 너무 빨리온다.

우리나라 기후가 그저 좀 따뜻하거나 아주 추웠다면 빨리빨리 문화는 이렇게까지 퍼지지 못했을듯 싶다.

또한 기후가 점점 변화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인간은 환경을 바꿀 수 있고 대비할 수 있지만 결국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은 철저히 기후의 영향에 의한것이 아닌가 싶다.

혐오스럽기까지한 냄비근성이라는 것도

이런 기후에 살다보면, 극심한 기후의 변화를 반복해서 겪다보니 그런것이 아닐까?

지난 겨울이 엄청나게 추웠어도 곧 봄이어고 엄청나게 더운 여름이 온다.

여름에 지난 겨울의 추위를 기억할 순 있지만 당장 더우니 그런 기억을 떠올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자연환경에 비춰본 한국인들의 특징을 떠올리다보면 이해할 수 없던 사람들의 행태가 조금 이해가 되기도한다.

기후변화가 심한것이 장점인제 단점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국민들의 특성에 매우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 아닐까??

살다의 반댓말은 없다.

죽음은 탄생의 반댓말이고

인생의 반댓말이 없듯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다.

그저 세익스피어에게 낚였을(?)뿐

그래서 삶은 왜? 보다 어떻게? 가 맞는것같다.

죽음은 삶의 종착역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또한 삶의 시작점에 이유가 없듯 끝도 이유가 없다. 차이라고하면 시작은 내 뜻과 상관없지만 끝은 내 뜻대로 할 수 있다??

자살은 삶을 끝내는 방법의 하나일뿐 의지라고 보기 어렵다. 실상 자살은 정신질환으로인한 죽음. 즉 병사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시작과 끝을 통제할 수 없다.

또한 사회의 발전, 발달은 이러한 인간의 본성, 본질을 꿰뚫음에서 시작된다.

보잘것없고 하찮은 인간...

폄하나 비난이나 자기애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현실이고 사실이고 진리다.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발전도 있고 미래가 있는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노력한다고 긍정적 사고를 한다고해서 누구나 전교1등을 할 수 없고, 누구나 금메달을 딸 순 없다.

타고나야한 것이 있지만 자신이 뭘 타고 났는지, 자신이 장점과 단점, 강점과​​약점을 정확히 알아야 전교1등이건 금메달이건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국어를 배웠으면 주제를 알고 수학을 배웠으면 분수를 알라는 농섞인 얘기가 있다.

인류의 역사는 개개인의 역사를 합친것이고

개인이 하는만큼 사회도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부족함을 알아야 부족함을 채우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멍청하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해야 우매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필자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여기서 온다고 생각해봤다.

자신을 냉정히 돌아보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선진국이며 그렇지 못한 나라가 후진국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냉정하게보면 후진국, 그것도 뒤에서 1등을 다투는 후진국이라고 본다.

죄다 핑계와 변명만 대고 죄다 스스로 똑똑하다 착각하는 부류들 뿐이다.

실상 이런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고 ㅎ

다른시각에서 본다는 것은 때때로 굉장히 위험해질 수 있다.

배척과 비난을 둘째치더라도 다른 시각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되어 본다는 이야기인데

막상 당사자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본다는게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을 보면서 답답함이 앞서지만 이해할 수 있는(동조가 아닌 이해) 사람들이 적음에

쉽게 토로하기 어렵다.

또한 불매운동 자체보다는 조금 더 멀리서, 조금 다른 시각에서 봤을때

무엇이 다르고 어떤 느낌일지 조금 적어보겠다.

일단 지금은 글로벌시대다.

자급자족의 시대는 이미 지난지 오래고

국가간의 무역과 교류가 활발한 요즘 세상.

불매라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음(?)을 본다.

애초에 한 국가가 모든것을 다 잘할수 없다.

자원과 기후 등 불가항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특허 개념이 도입된 이후로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따라가도 특허에 막혀 하고싶어도 못하고 할수 있어도 못하는 상황에 맞딱뜨리게 된다.

그냥 그런것 다 무시하고 본다해도

한국과 일본은 지형적으로 너무도 가깝고 무역과 교류를 한두해 해온게 아니다.

걷어낼 수 없고 걷어낸다는 것은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꺼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완제품은 그럴수도 있겠다지만(카메라는 불가능) 원료와 설비는 불가능이 아니라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는 구조다.

일본또한 완제품, 농수산물, 원료 등 한국을 떨어뜨려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그 잘나간다는 미국조차도 일본이 없으면 안되고

중국과 무역분쟁중이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일본 방사능이 원인이 된 것이 아니라 아베의 수출금지조치에 기인한 것도 문제다.

왜 이제서야 난리(?)인가??

그 많은 시간 허비하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방비책도 마련하지 않아놓고

그저 국민들만 선동당하고 있을뿐이다.

일본은 원전사건 이전부터 지진이 잦았고 그로인한 문제점들이 대두되어왔다.

공장이 무너지면 전세계가 요동치는 경우도 있다.(웹페이퍼 생산량 급감으로 인텔 cpu파동)

그리고...

우리를 보자.

6.25 전쟁이후 국민들은 열심히 일해서 기술과 부를 이룩해왔다.

근데 위정자들과 재벌들은 부를 축적하기에만 바빴다.

애초에 그들은 돈만 땡기고 부족한 기술은 가까운 일본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완제품 불매운동을 선동할뿐 뒤로는 열심히 일본원료 사고있는 것이다.

얘기하지 않았는가... 원료,설비쪽은 불매 불가능이 아니라 그런 단어조차 떠올릴 수 없는 구조라고...

그럼 불매하라고? 그냥 사라고?

이런 뚱딴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꽤나 많을 것이라 예상된다.

난 다른 시각을 적는다고 했지 불매 자체를 논한다고 하지 않았는데...

필자따위가 뭐라고 그런것을 논하겠는가.

그저 지금 이 상황에 휩쓸리지 않기를 소망할뿐이다.

불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대한민국에 깊이 박혀있는 1등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의 dna를 먼저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사대주의 국수주의 배금주의 등 이 사회를 살펴보고 나 자신을 살펴보는 것이 먼저가 아니냐는 이야기다.

그런 연후에 아베 발언과 방사능과 불매를 생각해야함은... 필자만 느끼는 허상인것인지...

최저임금과 부동산도 그렇지만

서민들 등골빨다 이젠 적당히(?) 가지고 있는 사람들 터는구나

탈세를 잡아야함은 맞지만

재벌들은 다 봐주면서 중견기업은 털겠다?

결국 대기업들만 남겨서 모든 시장을 다 잠식하겠다는 얘기고

빈익빈 부익부의 끝을 향해 가겠다는 의지다

전체 부의 99%를 상위 0.1%가 갖고

전체 부의 1%를 하위 99.9%가 가져가는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422&aid=0000364484&sid1=001

정당마다 특성이 있는데

한놈은 수치같은거 전혀 신경을 안쓰고

한놈은 수치에 집착하고

죽어나는건 국민뿐

국민소득 3만불 만드려고 집값올리고 임금올리고 물가올린듯한 ㅎ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1&aid=0010673317&sid1=001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외세의 침략이 잦았고

그 속에서도 꿋꿋이 이겨냈다고 배웠고

이런것에 자부심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를 반대로보면 수백번 침략당한 약하고 만만한

요즘 말로다 호구 아녔나 싶다.

자민족을 깎아내려서 얻는 것이 무엇이냐고 이야기하기전에

냉정하게 이성적인 비판의 잣대를 들이댄적은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뭐만하면 세계 최초네 세계 1위네 난리법석을 떨고

국민들은 그걸보며 자위한다.

군부시절 애국심 고취를 위해 세뇌했던 내용이

군부가 끝나고 세대가 지나도 유지되는 이유는 뭘까?

이는 국민(이라쓰거 개 돼지라 읽는다. 맘에 안들면 노예라고 읽어도 되고)들을 다스리는데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한 개개인은 별 볼일 없지만 우리나라는 대단하기 때문에 자부심을 가지고 다른나라 부러워하거나 가지말고

이 땅에서 피 쪽쪽 빨리며 가축보다 못한 죽음을 맞이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이 아닌 다른나라 사람이라 가정하고,

혹은 다른나라 얘기라고 가정하고 생각해보자.

필자의 논리가 잘못되었을수도 있지만

이건 한번쯤 심각히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임은 분명하다.

일전에 소비에 대한 글을 썼다.

그이름도 거창한 소비 십계명

http://asher-tech.tistory.com/m/119

하지만 물건을 잘 사는 방법.

현명한 소비자가 되고, 똑똑하고 스마트한 소비를 하고 싶었던 지난날을 반성해본다.

실상 꼭 사야할 물건에 대해선 이런 걱정이 적은편이다.

세제를 사야하고 속옷을 사야하고

밥을 먹어야하고 화장품을 사야한다.

비누를 사고 샴푸를 사고 위생백을 사고 비타민을 사고...

이런 소비레 대해 고민을 해야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상 이런 생필품에 들어가는 비용은 크지 않다.

대게 그 외의 제품들에 큰 비용이 들어가기 마련...

좀 더 냉정해져야하고 신체의 고통(?)을 감내할 필요가 있다.

때론 시간이 돈이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버스 두세정거장 정도는 걷는것이 당연한 일이고

돈으로 해결할 일과 내 품으로 해결해야할 일을 구분지어야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론...

이 물건을 왜 안사야하는지, 안산다면 이 물건이 필요할 때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해야한다.

비타민을 먹기 보다는 30분 일찍 일어나 아침을 챙겨먹어야하고

수십만원짜리 패딩보다는 내복을 입는 것이 나으며

크고 비싼 티비보단 큰 책장을 동서양 고전으로 채우는 것이 나으리라...

물건은 사는것보다, 어떻게 활용할지보다

안사는것, 안사야할 이유를

설사 그것이 핑계일지라도

안살 수 있다면 최대한 안사는 것이 맞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사고나서의 활용법보다는

안사고 불편을 해결할 방법을 연구해야함이 맞는 일이 아닐까?

수저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때

흡사 시대를 풍미했던 광고들의 카피를 보는 기분이었다.

누구의 입에서 나온 얘긴지 모르겠지만 광고의 카피처럼 사람들에게 짧은 임펙트를 주기엔 충분했을터...

식상하고 재미없고 공감하지 못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금수저니 흙수저니 단어만 나열하고 그칠것이 아니라 이것에 대한 더 깊은, 객관적인 비판의 시각을 가져보는 것이 옳은일이
아닐까??

수저론이 한시대를 풍자하는 아니, 론 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긴 하지만 어쨌든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저'라는 단어를 갖다대었을뿐 부, 신분의 차이, 그 한계는 과거에 더 심했다.

인류 역사가 지속되는한 이 부분은 지칭하는 단어가 바뀔순 있어도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 필자는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소위 말하는 수저론을 들고 나온것일까?

개인적으로 노블레주오블리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솔직히 그런거 필요없다.

다만 그들이 해야할 일은 다른곳에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영화 '아이언맨'을 보면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금수저 아니 다이아몬드수저 수준이다.

그래서(?) 하고싶은것을 한다.

돈 신경 안쓰고 시간 맘껏 투자한다.

아무데나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투자하는 것이다.

"하고싶은일을 해라. 좋아하는 일을 해라. "

라는 등의 썩어빠진 거짓말을 떠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실상 좋아하는일, 하고싶은일을 하라는 얘기는 '노오오오오력'을 강조하는 헛소리랑 같은 부류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제대로 찾기도 힘들지만 그 능력을 돈버는데 소진하고만다.

영화 얘길했지만 박사는 첨단기술이 집약된 연구소에서 몇십년을 보냈지만

토니 스타크가 동굴에서 만들어낸 소형 아크원자로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는 평범한, 굳에 수저로 표현하자면 동수저나 은수저쯤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일것이다.

그럼 영화말고 현실세계를 한번 둘러보자.

만류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튼.

모르는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뉴튼에게 열명이 넘는 가정교사가 있었다고한다.

남들은 사과가 떨어지면 줏어먹기 바빴고

한가롭게 앉아서 사과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지도 못했다.

그의 발견엔 배경이 큰 몫을 담당했다.

쇼펜하우어 또한 부유한 환경에서 살았다.

먹고자고 놀면서 사색에 잠기는 일이 많았다고한다.

시쳇말로 '한량', 소위 말하는 백수였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현대철학에 큰 획을 긋게된다.

필자가 이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것은...

인류의 발전이나 사회의 발전을 위해선 기본적으로 막고사는데 얽메이는 환경을 없애야한다는 것이다.

더 나은 미래와 삶을 꿈꾼다면 누구나 앉아서 사과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어야한다는 얘기다.

다 본다고 모두 만류인력의 법칙을 발견해내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또 다른 것을 알아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북유럽 선진국들이 자국민들이 적어도 굶어 죽게 만들지 않는 이유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100명중에 단 한명도 만류인력을 찾아내지 못할지라도, 천명중에 아니, 만명, 백만명 중에 한 사람만 그것을 발견해내면된다.

나머지 99만 9999명은 의미없는 것이 아니라 그 한명을 얻게위한 재료(?)의 개념인것이다.

무상복지가 사람은 해태하게 만든다고 이야기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나 사람이 나태해지고 게을러지는 것은 먹고살만해서가 아니라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이다.

물론 국민수준이 열악한 이 나라에서 무상복지를 한다면 온 국민이 일은 안하고 놀기만 하겠지만...

어쨌든 항간에 유행인 수저론은 새로운것도 아니고 그저 사람들이 사고를 게을리하니 마치 새로운 것인양 유행아닌 유행을 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할 필요도, 이런 글을 왜 쓰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는 이 사회가, 이 나라의 국민들이 한심스럽고 안타까울뿐이다.

이런거 몰라도 먹고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고, 오히려 쓸데없는 일이라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실상 먹고사는데 지장(?)이 있고, 그저 남들에게 이용만 당하며 사는 사람일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국민의 대다수임이 안타까울뿐이지만 말이다.

가장 위험하고 우려했던 상황이 펼쳐졌다.

국민들의 촛불시위에 이은 국회의 탄핵 가결

쓰레기를 치우라니깐 다른 쓰레기로 덮어버린 형국

정해진 프레임과 정보속에서 편향된 시각으로 촛불을 든 국민들

민주주의라는건 애초에 없었는데

마치 민주주의로, 국민의 힘으로 탄핵을 이뤄낸것처럼 되어버렸다.

그저 선동의 결과물에 불과한것을...

이제 국민들은 이 나라의 주인이 본인들이라는 착각에 빠지다 못해 진짜로 믿고 주장하게 될 것이다.

어차피 숨겨진 내용은 밝혀지지 않는다.

돈을 위해 국민들을 선동한 그들의 속내를 뚫어볼 수 있는 국민은 있기나한걸까...

채근담에 나오는 이야깁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참으로 어려운 이야깁니다.

말 그대로도 어렵고, 해석은 더 어렵고.

참고삼아 말씀드리자면 얼마전 타계한 세계의 석학 움베르트 에코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에 이런 구절을 썼습니다.

"성경이나 채근담을 읽지 않고 글을 쓴다고?"

우리가 꼭 읽어봐야할 책이 아닌가 싶네요.

암튼 본 주제로 돌아와서...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인데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라니...

좀 어렵죠?

저도 철학을 공부하거나 뭐 그런게 아니라서

무척이나 오랜시간 고민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얘길 하고 싶었는지, 이 이야길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너무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뜬금없이 한 이야기는 아닐테고...

과연 뭘까요??

사람이 환경이 다 다르고 경험도 다 다르기에...

저는 그저 제 고민의 결과를 나눌뿐입니다.

누가 이야기하건 정답이라고 받아들이기보다는 먼저 그 이야기에 대한 고민을 해야겠죠?

유명인이니 진실이고 비유명인이니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의 문제가 아니라 비판의 잣대를 바로세우고 이성적인 판단이 더 중요한 일이겠죠.

제가 생각하고 고민한 부분은 이러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전과자'를 지칭한다고 봅니다.

죄를 지었지만 처벌을 받았고, 사회가 정한 죗값을 치렀습니다.

물론 여기엔 제대로 된 처벌이라는 물음표가 남긴하죠.

어쨌든 전과자라고해서 그 죄를 범한 범인에 대한 선입견, 차별은 지양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레기들에게 낚이는 부분도 있는데요.

죄를 범한 죄인에게 이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입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말라.'는 이야기는 감형이나 사면에 쓰여져선 안된다는 것이 제 생각인데요.

정치범이나 경제사범에게 이런 문구를 들이대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런저런 구차한 변명을 앞세워 사면의 도구로 사용하는것...

그리고 이런 언플에 놀아나는것.

정말 기가찰 노릇이죠.

그리곤 그들은 풀려납니다 ㅎㅎ

실상 돈도 돈이지만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범인들에게 그런짓을 하는 사람 모두가 같은 죄인이 되는 꼴인데...

안타깝고 답답하죠.

음주운전을 방조하거나 용인하면 같이 처벌한다고 하는데, 살인과 횡령을 방조하고 용인하는데 저런 표현을 가져가 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지라.

뭐 제 생각은, 고민의 결과는 이러합니다.

살면서 이런 고민과 생각을 많이 해보는 것이 옳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긴시간을 투자해 이런 결론(?)에 다다렀네요.

말씀드린대로 동감과 반대와 다른 의견, 그 어떤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고민해보라는 것이죠.

결론이 다르면 뭐 어떻습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결론은 다르지만 고민을 많이 하고 사고를 많이 한 사람과의 대화는 대립하거나 서로의 잘잘못을 논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고의 과정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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