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에선 경기가 내리막길이라하고

한쪽에선 호조라하고

누구 편에 서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정확히 보는 것이 중요하다.

자유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실상 방종자본주의인 우리나라는

부의 편중이 더 심해지고 가파르게 상승하게 되어있다.

경제는 제로섬 원리에따라

부를 획득한다는 것은 타인의 부를 빼앗는 것이다.

통계는 경기가 살아난다한다.

하지만 일부 부자들의 주머니만 더 부를뿐이다.

국민소득 평균은 올라간다한다.

허나 1억 가진이와 99억 가진이의 평균은 50억이고

1백만원 가진자와 99억9천9백만원 가진자의 평균도 50억이다.

또한 1조를 가진자는 100억 가진자 100명을 희생시켜 2조로 불린다.

2조와 0원의 평균을 낸다한들 그 무슨 의미가 있을까...

통계청장도 짤린마당에

아직도 통계와 평균에 놀아나는 국민들이 한심스럽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인에 대한 환상(?)이 유독 심한듯하다.

내가 돈을 벌고 먹고 살기 위해 직업을 가졌듯

그들도 돈을 벌려고 정치인이라는 직업을 가졌을뿐인데...

다만 남들보다 더 쉽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종이라 진입장벽이 높다.

또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좋은 정치인, 서민을 위한(?) 그딴건 없다.

촉석봉정(矗石逢釘)

‘쪼뼛한 돌이 정을 맞는다’

모난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과 같은 뜻이다.

그런 정치인이 있다면 일정위치에 올라서기도 전에 솎아내지고

아니 이미 진입부터 불가능하다.

근주자적 근묵자흑(近朱者赤 近墨者黑)이라 했다.

제정신 박힌 인간이라면 국회나 청와대쪽으로 오줌도 누지 않을것이란 얘기다.

믿고싶지 않다고해서 진실이 바뀌는 일은 없고

게으른 자에게 미래란 없다.

몇년에 한번 투표하는 그런 게으르디 게으른 행동으로 세상이 바뀔까?

인터넷으로 열심히 댓글달고 좋아요 누르면 세상이 바뀔까?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넷이 보급되었지만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정확히는 오프라인의 가치가 더 올랐다는 것이다.

무식하니 정치인들에게 놀아나는 것이고

무지하니 남들이 세상을 바꿔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시대에 손자의 가르침은 사치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좀 고민해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무식과 무지를 인정해야 벗어날 길이 있고

인정하지 못하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뿐이다.

나를 알아가는 일은 평생을 바쳐도 끝나지 않는다.

나도 모르면서 남을 이야기하는 어리석음을 빨리 벗어야하지 않을까?

항간에 “페미 탈출은 지능순”이라고 하더라.

어리석음을 탈출하는 일도 마찬가지라본다.

만약 본인이 지능이 낮다면 노력하면된다.

그러면 남들에게 지능이 낮음을, 무식하고 무지함을 들키지 않을 수 있다.

한 사회의 도덕성은
그 사회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 주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The test of the morality of a society is
what it does for its children.
디트리히 본회퍼 / Dietrich Bonhoeffer

http://naver.me/xAPXByZ6

위 링크는 캐나다의 한 주에선 아이와 같이 택시를 탈 때 카시트 없인 택시를 탈 수 없다는 기사다.

또한 우리가 아이들을 어린이집부터 입시학원까지 뺑뺑이를 돌릴때

선진국들은 아이들을 뛰어놀게 한다.

그리고 앰버 경고라는게 있는데...

앰버 경고(AMBER Alert, America's Missing: Broadcasting Emergency Response)는 어린이가 실종되었을 경우 미국과 캐나다,대한민국에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들에게 즉시 그 사실을 노출시키는 시스템을 말한다.

재밌는건 우리나라도 속해 있다는 사실(?)이다.

앰버경고를 본 기억이 있는가??

필자는 없다.

그냥 허울뿐인것이다.

우리는 서두에 언급한 명언에 대해 좀 더 생각해봐야한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한 부분은

역으로 성인들이 어떠한가 하는것이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었을때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란 아이는 커서 사랑과 관심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즉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고민과 행동이 필요함을 이야기하는 것일게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에 도덕성이란 없고, 미래란 더더욱 없다.

비관적인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임을 기억해야할터...

공포심 조장이다.

범죄자를 군중속에 숨겨두어 항상 타인을 의심하게하고 안절부절 못하게하는...

우매한 군중을 다스리기 위해 공포심을 심어주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선택이다.

인권? 아직도 그런 뜨드 미지근한걸 믿는가?

인간에겐 권리가 있지만 범죄자에겐 권리보다 책임이 앞선다.

정말 인권을 강조하고 싶다면 범죄자에게 수갑도 채워선 안되고 가둬둬서도 안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것들을 멀리하고 배척하려한다.

그것이 사람이 됐건 물건이 됐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인권을 앞세워 그런 행위를 차단한다.

즉 인권은 허울에 불과하고 그저 군중을 다스리기 위한 꼼수일 뿐인 것이다.

범죄를 범죄자를 멀리하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권은 어디에 있을까?

안전해지고싶고 안전하게 살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성향과 욕구는 인권이 아닐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인구드립(?)이 멍청한소리라는것을 깨닫게 된다.

통상 1억을 이야기하며 인구가 적어서 내수만으로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들 많이 듣고 하고 할꺼다.

그렇게 따지면 인구 1억넘는 아시아 국가들은 다들 먹고살만해야하고

천만도 안되는 유럽 국가들은 굶어죽어야한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인구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인구가 너무 많다.

하지만 인구가 줄어들면 어느 년놈들의 벌이가 줄어들기 때문에

외국인들을 무분별하게 수입해가면서까지 유지, 혹은 더 늘리려고 한다.

냉정하게 따져보자

이 좁은 땅덩이에 5천만이 산다.

일단 물류비 잇점이 크고

운송수단도 많이 발달해있다.

결정적으로 기업을 위한 세제혜택이 사기꾼들 울고갈 정도로 되어있고

잘못해도 책임질 일이 거의 없다.

노동시간 안지키며 직원들 닳아없어지도록 부려도 되고

여차하면 본사직원 소수에 죄다 하청주면된다.

사람들이 경제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부족하니 정치인들 기업인들 언론에 놀아나기만 하며

오히려 그들을 응원하고 있는 꼴이다.

우리는 좀 더 냉정하게 사고해야할 필요가 있으며

모르면 억지부리며 괴변을 늘어놓는게 아니라

모른다고 얘기하고 알려달라하고 귀를 기울이는 방법을 고민해야한다.

똑똑하다는 기준이 뭘까요?

공부를 잘하면 똑똑한 걸까요?

무엇이든 한 분야에 경쟁력이 있으면 똑똑하다고 해야하는걸까요?

IQ 검사를 받으면 알까요??

공부를 기준삼기 전에 공부에 대한 정의가 정확히 자리잡고 있어야겠죠.

어떤분야에서 어떤 경재력이 있는지 고민해봐야겠죠.

단순히 신체구조로 잘 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IQ검사가 정확히 어떤 검사인지를 아는것이 먼저겠고요.

스스로를 혹은 타인에 대해 통상적으로 이야기하는 똑똑함과 멍청함을 구분짓는 기준...

수많은 기준이 있지만

감히 저는 한 문장으로 정리해 봅니다.

"당신은 똑똑하다고 생각합니까? 멍청하다고 생각합니까?"

이 문장에 이 질문에 답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대답이 나오겠지만

일단 '난 똑똑해요' 라는 대답은 멍청한겁니다.

두가지중에 하나를 물었으니 하나로 답을 하는게 맞다고요? 멍청하다고 할순 없으니 똑똑하다고 말한다고요?

스스로 멍청하다고 얘기하면 자존감이 낮고 자기애가 없고 소극적이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요?? 그게 왜 멍청하냐고요??

네 일단 그런 단답형 교육에 젖어 있고, 질문자의 의도나 왜 저런 질문을 던지는 것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남들이 이런질문렌 이렇게 답하는거다 라는 이상하고 멍청한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죠.

멍청하게 가르쳤는데 똑똑한 제자가 나올 순 없습니다.



'좀 멍청한 구석도 있지만, 그렇다고 멍청한건 아닌것 같고 아주 똑똑하진 않지만 그래도 평균은 하는것 같아요.'

그럼 이런 답변은 어떨까요??

나름 단답형보다 낫지만... 똑똑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여집니다.

그럼 넌 뭐가 그리 대단하고 똑똑해서 이런 이야길 하냐고 하시는분도 계실껍니다.

사실 저는 굉장히 멍청한 사람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멍청하다는 사실이죠.

저는 멍청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찾고 더 많은시간 찾아보고 읽어보고 생각합니다.

그렇게해서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멍청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죠. 이것이 반복되면 똑똑해지는것 아닐까요??

사람은 누구나 멍청합니다.

성악설 성선설에 빗대어보자면

저는 성똑설보단 성멍설을 주장할겁니다.

똑똑하다면 더이상의 교육도, 사고도, 정보고 의미가 없겠죠.

멍청하니깐, 잘 모르니깐 장시간 교육을 받고, 끊임없이 정보를 받아들이는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멍청하다.'는 진리를 깨우쳐야 똑똑함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것이죠.

똑똑해서 뭐하느냐고요??

그럼 똑똑이라는 글자를 성공이라고 바꿔봅시다.

똑똑해지고 싶으세요?

성공하고 싶으세요??

그럼 자신의 멍청함을 깨달아야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야합니다.

폄하가 아닌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에서, 그 암울하고 참담하고 빛이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작점입니다.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려면

내 출발점이 어딘지 정확하게 알아야하지 않을까요??

100미터 앞에 결승점이 있는데 내가 13초에 뛸수 있을지 15초에 뛸 수 있을지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대충은 알아야죠.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서 내 출발위치가 0미터 지점인지 10미터 지점인지 -100미터 지점인지 알아야하겠죠??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똑똑해질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허나 똑똑한 사람들의 삶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삶엔 차이가 있을수밖에 없어요.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곳이 선진국이고 선진문명이 되며, 그렇지 못한 나라가 후진국이 되며 선진문명을 받아들이는 나라가 됩니다.

그런의미에서 우리나라는 후진국이죠.

폄하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근데 현실을 이야기했는데 폄하라고 이야기하면 그 현실이 바뀌나요??

그럼 미래는 바뀌나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결국 출발점을 정확하게 아는것 부터가 시작이니까요.

내 자신을 냉정히 바라볼 수 있어야, 타인과 사회도 냉정하게 볼 수 있습니다.

내 자신을 정확하게 아는 노력과 경험으로 타인과 사회를 알 수 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자아비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누구나 다 아는 문구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는 이 사회가, 사람들이 무식하고 멍청하다는 반증이 되겠죠.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멍청하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멍청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최소한 나보다는 나은 사람이고,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난 멍청하다.'라고 이야기해봅시다.

멍청해야 더 찾아보고 공부하고 연구하게 됩니다.

멍청하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해야 발전이 있습니다.

다시한번 여쭤봅니다.

"당신은 똑똑한가요 멍청한가요??"

어떤 얼간이가 국내 자동차 생산인건비가 미국보다 높다는 소릴하더라.

통계도 있고, 그에 기인한 기사도 있다.

사실일까??

벤자민 디스레일리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세상엔 3가지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There are three types of lies -- lies, damn lies, and statistics.

통계조사업에 종사하는, 우리가 접하는 통계를 내는 일을 하는 사람은 이런 얘길합니다.

"어떤 답을 원하시나요?"

맞춤(?) 통계가 가능하고, 통계 결과는 발주처가 즉, 돈주는 놈이 누구냐에떠라 달라질 수 있다는 야기다.

단순 숫자나열에 대한 통계도 백프로 믿을게 못되지만 그보다 더 복잡한 통계는 오죽하긋냐.

국내인건비는 정규직만 계산하고 사내하청, 1,2,3차 하청은 값에 없다.

급여의 세전, 세후 금액과 같은 장난질(?)이랄까??

이런 거짓말을 근거라고 디밀며 장난질(?)치는 사람들이 많다.

뭐 댓글부서 운영하는 대기업에서 하는 짓이야 뻔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에 속아넘어감도 사실이니...

촛불집회는 2002년 미순이효순이 사건때

광화문 집회에서 처음 도입되었다.

촛불을 나눠들고 미군을 책임과 사죄를 외쳤다.

참!! 이때 전경버스로 길을 막는 소위 차막도 처음 도입됐다.

촛불을 들고 추위에 떨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우리는 미 대사관 앞으로 이동하려했지만 버스로 막아놓은 길을 뚫을 수 없었다.

그저 대사관 앞에서 소리좀 지르겠다는데

촛불을 동원한 첫 평화시위였건만

우리는 그냥 돌아서야했다.

몇몇 정신나간 정치인들의 홍보차량이 군중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고

우리는 버스를 밀라고 했지만 그들은 광고를 위한 행동이었을뿐이다.

이때부터 촛불평화시위가 점점 정착되었고

촛불집회로 무언가를 얻은 경험은 없다.

얻고자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 댓가가 필요하다.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는 직접투표를 어떻게 얻어냈을까??

일제시대 독립운동도 아닌데

목숨걸고 총칼 앞에서 싸워야했다.

말로해서 해결될 부분이 아니었기에 행동으로 옮겨야했고

말도 안되는 탄압속에서 전쟁과 같은 투쟁을 이어가야했다.

목숨을 잃은이도 있었고 온갖 고문에 시달린 사람도 있었다.

결국 그들의 핏값으로 직접선거제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럼 촛불평화시위는??

아무것도 잃고싶지 않으니 나타난형태의 모임이라고 본다.

집회? 시위? 웃기는소리다.

그저 인터넷에서 키보드로 떠들어대던 인간들이 오프라인으로 나와서 손가락이 아닌 주디로 떠들어댈 뿐이다.

아무것도 바뀌는 것은 없다.

내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고, 대가를 지불했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정도 댓가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큰 솥의 물을 끓여야하는데 촛불하나로 물을 끓이려하는 것이다.

물은 커녕 솥도 뜨거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시위대가 폭력적인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들이 틀에 가둬놓고 기준을 멋대로 새워놓고

그것을 벗어나면 무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 무력에 맞서게위해 시위대 또한 무력을 사용해야했다.

같은 무력이지만 시위대는 폭력이었고, 무력을 휘두르는 시위대는 폭도라 이야기했다.

그리고 멍청한 국민들은 그게 맞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어항속에서 촛불을 켤 뿐이다.

그들은 어항속의 초를보며 '야~ 예쁘다.'라며 농을 던질지도 모른다.

어항 밖으로 나오거나 어항이 깨져야 위기의식을 느낀다.

촛불이 어항밖으로 나오면 혹 카펫이나 쇼파에 불이 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되고

어항이 깨지면 그 조각에 손발을 벨까봐 겁을 먹게되는 것이다.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 어느 역사를 보아도

평화시위(?)로 원하는 것을 얻어낸 적은 없다.

나 또한 폭력시위는 원치 않는다.

시위엔 무력을 사용해야한다.

그들이 폭력이라고 폄하하고 국민들을 선동할 뿐이다.

폭력은 안된다. 무력을 사용해라.

그러면 저들이 폭력을 사용할 것이다.

그럼 그들의 폭력성을 욕하면 된다.

시위대가 폭력을 쓴 것이 아님을 반드시 알아야한다.

시위대의 힘은 무력이고, 그에 맞서는 공권력은 폭력이다.

정신차리고 잘 봐라. 누가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예전엔 나라의 큰 일들에 60갑자를 앞에 붙여서 해당연도를 기억하게 했고

20세기 들어서는 날짜를 붙여 그 사건을 기억하게 했다.

미국의 9.11을 제외하고라도

12.12사태, 4.19의거, 5.16쿠테타 등등

3.1절도 있고 8.15 광복절도 있고

좋은일이건 슬픈일이건 연호, 날짜를 사용했는데

언제부턴가 이것이 사라졌다.

왜??

날짜가 붙어있으면 사건에 대해 더 잘 기억하고, 그 날짜가 매년 돌아올때마다 반복해서 떠올리고

그러다보면 잊지 않고 각인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있는 지배층은 사건에 날짜를 붙이지 않았다.

그저 지역명, 건물명, 선박명 등

사람들이 "세월"이란 단어를 밥먹듯 사용하지만...

'세월호' 는 잊어버리게 되고 그 느낌이 둔해지게 될 것이다.

세월호사태라는 단어보다는 4.16 침몰사건 이라는 명칭이 더 낫지 않을까??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6.29붕괴사건으로 명명했다면 성수대교가 무너진 날짜를 붙여 10.21교량붕괴사건으로 명명했다면

서해훼리호 침몰사건을 10.10침몰사건이라 명명했다면

그렇게 했다면... 어쩌면....

이번 4.16침몰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것이다.

우리가 큰 사건사고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엔 이런 이유가 숨어있다.

그 어떤 대통령도, 그 어떤 국개의원도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국가는 나와바리고, 국민은 빵셔틀이기 때문이다.

어렸을때 80년대 초반까지

동네마다 동바형이 있었다.

그 이후엔 사라졌다.

다들 알고 있다시피 86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거지들을 다 잡아갔고, 한술(?) 더 떠 서울의 고아원도 다 지방으로 옮겼으니...

뭐 그건 그렇다치고...



그들은 소위 동네 바보 형 이라고 불렸고 혹은 거지로 불렸다.

필자가 살던 동네, 정확히는 옆동네였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본인도 몰랐고 우린 '백원만'이라고 불렀다.

항상 지하도 통로 중간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백원만~"을 외치던...

그래서 백원만으로 불렸다.

몇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항상 남루하다 못해 냄새나는 옷을 걸치고 다녔고, 사시사철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당시 흔했던 거지의 모습이었지만

일반 거지들과는 달랐다.

몇몇 아이들은 그에게 말을 걸기도 했고, 돌을 던지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뚜렷하게 기억하는 것중에 하나는...

그는 '바보'라고 하면 화를 냈다.

그냥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정말 심하게 화를 냈다.

그러다가 어른들에게 뭇매를 맞기도 했고...

요즘들어 그 사람이 자꾸 생각이 난다.

사람들을 보며, 사회를 보며, 인터넷을 보고, sns를 볼때면

그 동바형, 백원만이 떠오른다.

'바보에게 바보라고 이야기하면 화를 낸다.'

'정신병자에게 미친놈이라고하면 아니라고하며 화를 낸다.'

자신의 모습을 냉정히 볼 줄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다.

진실을 이야기하면 화를 내고

제정신이 아닌 이야기에 환호를 보낸다.

누가 이야기하느냐보다는

맞는 말인지를 살펴보아야함에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 무조건 맞고 옳단다 ㅎㅎ

길가의 걸인에게도 배울것이 있거늘...

행색이 초라한 이들의 말은 무조건 틀린말이고 자격지심이고 열등감의 표출이란다.

그러면서 자신의 말은 옳고 진리고 자신감이라한다.

우스운건 실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남들이 하는 말이 그럴싸하다고하여 앵무새처럼 그대로 옮길뿐인데

그게 자신의 생각이고 말이라 한다.

인터넷이 보급되며 나온 소위 '펌'문화가 부지불식간에 사람들의 사고영역까지 잠식한 것이다.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이가 드물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이도 드물고

냉정함과 이성을 가지고 비판하는 이는 없다시피한다.

시험문제를 풀기위한 기계로 키워지고

자기맘에 드는 언론사를 통해 세뇌되었으며

잘못을 인정하면 지는 것이라 배우고

실수는 끝까지 잡아떼면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을 보아온 결과다.

생각한다고 착각하는 앵무새며

시민의식을 가졌다고 거짓말하는 양치기 소년에 불과할뿐인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사고할 능력도 없다.

그렇게 무식한 돌쇠가 되어 주인의 말에 목숨까지 내어놓고, 칼을 들어 싸움질을 일삼는다.

무식하게 편을 갈라 싸우고, 주인 어른의 말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버린다.

그저 네가 잘못됐다 손가락질하고 욕을 할 뿐...

자아비판이나 배려, 양심 따위는 차라리 개에게 바라는 것이 나을 정도이니...

이 사회가 이지랄인 것이... 네 잘못임을...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

언제쯤 우린 주인의 손을 벗어나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개,돼지란 놀림에 광분하며 스스로 개,돼지보다 못함을 인정하는 꼴을...

언제까지 봐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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