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시각에서 본다는 것은 때때로 굉장히 위험해질 수 있다.

배척과 비난을 둘째치더라도 다른 시각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되어 본다는 이야기인데

막상 당사자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본다는게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을 보면서 답답함이 앞서지만 이해할 수 있는(동조가 아닌 이해) 사람들이 적음에

쉽게 토로하기 어렵다.

또한 불매운동 자체보다는 조금 더 멀리서, 조금 다른 시각에서 봤을때

무엇이 다르고 어떤 느낌일지 조금 적어보겠다.

일단 지금은 글로벌시대다.

자급자족의 시대는 이미 지난지 오래고

국가간의 무역과 교류가 활발한 요즘 세상.

불매라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음(?)을 본다.

애초에 한 국가가 모든것을 다 잘할수 없다.

자원과 기후 등 불가항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특허 개념이 도입된 이후로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따라가도 특허에 막혀 하고싶어도 못하고 할수 있어도 못하는 상황에 맞딱뜨리게 된다.

그냥 그런것 다 무시하고 본다해도

한국과 일본은 지형적으로 너무도 가깝고 무역과 교류를 한두해 해온게 아니다.

걷어낼 수 없고 걷어낸다는 것은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꺼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완제품은 그럴수도 있겠다지만(카메라는 불가능) 원료와 설비는 불가능이 아니라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는 구조다.

일본또한 완제품, 농수산물, 원료 등 한국을 떨어뜨려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그 잘나간다는 미국조차도 일본이 없으면 안되고

중국과 무역분쟁중이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일본 방사능이 원인이 된 것이 아니라 아베의 수출금지조치에 기인한 것도 문제다.

왜 이제서야 난리(?)인가??

그 많은 시간 허비하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방비책도 마련하지 않아놓고

그저 국민들만 선동당하고 있을뿐이다.

일본은 원전사건 이전부터 지진이 잦았고 그로인한 문제점들이 대두되어왔다.

공장이 무너지면 전세계가 요동치는 경우도 있다.(웹페이퍼 생산량 급감으로 인텔 cpu파동)

그리고...

우리를 보자.

6.25 전쟁이후 국민들은 열심히 일해서 기술과 부를 이룩해왔다.

근데 위정자들과 재벌들은 부를 축적하기에만 바빴다.

애초에 그들은 돈만 땡기고 부족한 기술은 가까운 일본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완제품 불매운동을 선동할뿐 뒤로는 열심히 일본원료 사고있는 것이다.

얘기하지 않았는가... 원료,설비쪽은 불매 불가능이 아니라 그런 단어조차 떠올릴 수 없는 구조라고...

그럼 불매하라고? 그냥 사라고?

이런 뚱딴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꽤나 많을 것이라 예상된다.

난 다른 시각을 적는다고 했지 불매 자체를 논한다고 하지 않았는데...

필자따위가 뭐라고 그런것을 논하겠는가.

그저 지금 이 상황에 휩쓸리지 않기를 소망할뿐이다.

불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대한민국에 깊이 박혀있는 1등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의 dna를 먼저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사대주의 국수주의 배금주의 등 이 사회를 살펴보고 나 자신을 살펴보는 것이 먼저가 아니냐는 이야기다.

그런 연후에 아베 발언과 방사능과 불매를 생각해야함은... 필자만 느끼는 허상인것인지...

이건 좀 고민해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짱께라 욕하고 쪽바리라 욕하지만

짱께같을때도 있고 쪽바리같을때가 있다.

수시로 외침을 겪으며 계속해서 짱께와 왜놈의 피가 섞여왔는데 그 때문일까?

종종 보이는 짱께같은 사람들 혹은 그보다 못한놈들

왜놈같은 사람들 혹은 그보다 못한놈들

그리고 짱께라 떼놈이라 손가락질하고

왜놈이라 쪽바리라 욕하고



그렇다면 한국인의 특징은 뭘까?

조센징이라고 한궈빵즈라고 욕먹는 우리는 뭘까?

어쩌면 중국을 욕하는거나 일본을 욕하는건 우리 자신에게 욕하는 꼴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예수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한다고했다.

서로를 욕해서 얻는 것은 또 무얼까?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인생살이에서 느낀건

그런 욕, 폄하를 입에 올리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 못봤고

상종할수록 상종 못할 인간이라는 느낌만 받았다.

과거 공자와 순자가 사람들을보며

그 천성이 악한지 선한지를 논했다.

어쩌면 당시엔 선과 악 만으로도 충분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작금의 시대에 사는 이들에게 한가지 더하고 싶은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성우설(性愚說)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리석다는 뜻이다.

사회의 일원으로, 인간답게, 제 값어치를 할때까지 수십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이처럼 오랜기간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동물들과 달리 글도 배워야하고 의사소통을 위한 말도 배워야해서 그럴까?

학교를 다녀야해서??

동물들중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는 종류가 있다.

태어나기전 어미가 죽거나, 어미의 시체를 양분으로해서 생명이 시작되는 동물도 있다.

그들에겐 단 한마디의 가르침도 없지만

평생 자연의 한부분을 담당하며 살아간다.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걷는 동물도 있고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알에서 깬 곳을 찾아오는 동물도 있다.

인간이 동물보다 뛰어다 아니다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왜 그리 오랜 교육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역으로 인간은 그만큼 무지하고 무식하고 어리석음이 아닐까?

우습지만 수십년을 보내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인간도 많다.

조사해본적은 없지만 성체가 된 동물들이 제대로 살아가는 수 보다

인간이 성인이되고 제대로 살아가는 수가 상대적으로 더 적지 않을까 싶다.

인간을 폄하하기 보다는

만물의 영장이고 그 어떤 동물들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졌다고

그 사실만으로 자위하는 모지리들에게 일침을 날리기 위함이다.

손자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고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동물들보다는 뛰어나다는 생각 자체가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일이고

자신을 돌아보면 참 어리석은 존재임을

하찮은 존재임을 깨달아야함에도

그런 인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전에도 없던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

스스로의 무지와 무식, 어리석음을 감추려고만 할 뿐이란 얘기다.

자신을 냉정히 볼 수 있어야 타인도 냉정히 볼 수 있고

어리석음을 깨달아야 그 어리석음에서 깨쳐나올수 있음에도

그저 어리석다는 말에 화를 내고 기분 상해한다.

정말 재미난 것은

바보에게 바보라고하면 화를 낸다.

어리석은 이에게 어리석다하면 화를 내고

무식한 놈에게 무식하다하면 성을 내고

무지한 이에게 공부좀 하라고하면 그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 한다.

내로남불, 핑계, 변명 등

객관성과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없는 현대인들을 보고 있자면

이것들이 사람인가 싶다.

정말 개 돼지며,

아니 짐승보다 못한 존재들이 스스로 자신을 과시하는

볼상사나운 벌레를 보고있는 느낌이 든다.

필자 또한 어리석은 존재다.

성우설(性愚說)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다만 어리석음을 알기에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일뿐이다.

뛰어난 사람, 천재들은 본인이 아닌 타인들이 먼저 알아보고 인정해준다.

평범하지도 못하고 어리석음의 끝판왕을 달리는 자들이

자신이 똑똑하다 생각하고, 자신은 평균은 된다 말한다.

냉정히 생각해보자.

난 내가 어리석어 성우설을 생각해 냈다.

그럼 이런것을 상상조차 못한 당신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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